서강동의 유래, 한강 나루에서 대학·카페 거리까지 – 마포 서강동 지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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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동의 유래, 한강 나루에서 대학·카페 거리까지 – 마포 서강동 지명 이야기

서강동의 유래, 한강 나루에서 대학·카페 거리까지

서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서강대교’라는 이름은 들어봤을 거다. 그런데 막상 “서강동이 어디냐, 왜 그렇게 부르냐”라고 물으면 자세히 설명해 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금은 서강대학교, 상수역·광흥창역, 카페와 원룸이 떠오르지만, 서강동의 유래를 따라가 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이 글에서는 조선시대 한강 나루에서 시작해,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과 현대 마포 생활권까지, 서강동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변해 왔는지 차분하게 정리해 보겠다.

1. 서강동은 어디에 있는가 – 지도 위의 서강동

현재 서강동은 행정구역상 서울 마포구 남부에 위치한 행정동이다. 법정동 기준으로는 창전동·상수동·신수동·구수동·현석동 일부를 관할하는 형태라서, 지도만 보고는 ‘서강동’이라는 이름을 찾기 어렵다. 요즘 말로 하면 “법정동은 따로 있고, 행정동 이름이 서강동인 구조”다. 쉽게 말해,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서강동은 행정편의상 묶어 부르는 생활 단위에 더 가깝다.

지리적으로 보자면, 북쪽으로는 와우산과 서교동·창전동, 동쪽으로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용산·여의도, 서쪽으로는 대흥동·공덕동이 닿아 있다. 경의중앙·공항철도 서강대역, 6호선 광흥창역·상수역이 서강동 생활권 중앙을 관통하고, 강북·강남을 잇는 서강대교 북단 역시 이 동네의 상징 같은 존재다. 이 정도 위치를 떠올리면, 서강동이 왜 한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이름인지 자연스럽게 감이 잡힌다.

2. 서강(西江)이라는 이름 – ‘서쪽의 강’에서 출발하다

서강동의 유래를 이해하려면, 먼저 ‘서강(西江)’이라는 단어 자체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서강이라는 말은 원래 동네 이름이 아니라 한강의 특정 구간을 부르던 별칭이다. 조선시대 문헌과 지명 유래 자료를 보면, 마포·용산·서강 일대 한강을 통틀어 ‘마호(麻湖)·용호(龍湖)·서호(西湖)’라고 부르던 때가 있었다. 여기서 ‘서호’가 바로 ‘서쪽에 있는 강·호수’라는 의미로, 오늘날 서강으로 이어진다.

마포구 지명 유래를 정리한 자료들을 보면, 서강은 한강 본류 가운데서도 성곽 서쪽을 흐르는 구간을 지칭하는 이름이었다. 강동·광진 쪽이 동강(東江) 이미지라면, 마포·용산 쪽은 서강(西江)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이 서강이라는 지리적 개념이 인근 마을을 통칭하는 지명이 되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서강동(西江洞)’이다. 한마디로, 서강동은 ‘서강이라는 강가에 붙어 있는 동네’라는 매우 직관적인 이름인 셈이다.

3. 조선시대 서강 – 나루와 창고, 그리고 ‘서강 서반’

조금 더 역사적으로 들어가 보자. 조선시대, 한성부 서쪽 외곽에는 마포·용산·서강 세 곳의 주요 포구(나루)가 있었다. 남쪽 지방에서 올라온 쌀·소금·생선·뗏목이 이 세 곳을 거쳐 도성으로 들어왔다. 그중 서강 일대에는 단순한 포구를 넘어 국가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 즉 ‘광흥창(廣興倉)’이 자리 잡고 있었다.

광흥창은 지금의 광흥창역 인근, 서강대교 북단 언저리에 있던 국가 창고다. 이곳에는 여러 관리들에게 지급할 봉녹미가 보관되었고, 자연스럽게 관리들의 집과 하인·상인들이 모여 살았다. 그래서 예전에는 이 일대를 두고 ‘서강 서반(西江西班)’이라는 표현도 썼다. 서강에 사는 양반, 혹은 서쪽 강가에 모여 살던 관리층 취락이라는 뜻이다. 서강동의 기원은 이렇게 ‘한강 나루+국가 창고+관리 마을’이라는 세 요소가 맞물린 곳에서 시작한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4. 서강동의 행정 연혁 – 서강방에서 서강면, 그리고 서강동까지

이제 행정구역 변천을 통해 서강동의 유래를 정리해 보자. 지명은 결국 행정권의 변화와 함께 움직인다. 조선 후기를 기준으로 하면, 서강 일대는 한성부 서부 서강방(西江坊)에 속한 성외(城外) 지역이었다. 당시 문헌에는 ‘서강방 성외 마을’ 정도로 포괄적으로 묶여 있었다.

갑오개혁(1894년) 이후 근대적 행정체계가 도입되면서 지도가 조금씩 바뀐다. 1911년 무렵 기록을 보면, 이 일대는 경기도 경성부 서강면 창전리·상수일리 등으로 편제되어 나온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후에는 고양군 서강면으로 재편되며, 마포·연희·용산 일대가 서로 섞였다가, 다시 1936년 경성부 확장 때 도심 편입이 이루어진다.

행정동 이름으로서의 ‘서강동’은 비교적 최근인 1950년대에 등장한다. 1955년 4월, 당시 서강동부와 서강서부 동회를 통합해 서강동이라는 행정동이 신설되었다. 이후 1970년 5월 5일에는 서강동을 창전동과 상수동으로 나누어 따로 운영했고, 2007년 1월 1일에 다시 두 동을 통합해 통합 행정동 ‘서강동’이 출범했다. 즉, 주민센터 명칭으로서의 서강동은 1955년→1970년 분리→2007년 재통합이라는 흐름을 밟아 오늘에 이른다.

이 과정을 정리하면, 서강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부터 한강 구간 이름으로 존재했고, 일제강점기에는 서강면 등 면 단위로 쓰이다가, 해방 후 행정동 단위로 재정비되면서 ‘서강동’으로 고착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서강동이라는 이름은 오래된 강 이름을 근대 행정체계 속에 맞게 가져다 쓴 결과라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5. 서강동·신수동·구수동 – 같은 강, 다른 이름

서강동 주변을 보면, 신수동·구수동·현석동 등 비슷한 뉘앙스의 이름들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전편에서 다뤘던 신수동의 ‘수철리(水鐵里)·무쇠막’ 이야기를 떠올려 보면, 이 일대 지명들이 모두 한강·물·공업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실제로 마포 지명 유래를 다룬 글에서는 신수동과 구수동, 서강동을 한 묶음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조선 후기 문헌에 등장하는 수철리·구수철리·신수철리는 마포 남쪽 한강변, 즉 지금의 신수동·구수동·서강동에 걸쳐 있던 마을 이름이었다. 이 중 신수철리는 ‘새로운 물과 쇠의 마을’, 구수철리는 ‘옛 물과 쇠의 마을’ 정도로 풀이되는데, 이런 이름들이 광복 이후 신수동·구수동 같은 동명으로 분화한 것이다. 서강동은 그 중에서도 좀 더 넓게 한강 전체 구간을 아우르는 ‘서강’의 이름을 가져다 쓴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즉, 이 지역 지명 구조를 풀어 보면,

  • 서강동: 서강(한강 서쪽 구간)을 대표하는 큰 지명
  • 신수동·구수동: 수철리·무쇠막에서 갈라진 세부 마을 지명
  • 현석동: 한강변 바위·나루와 관련된 지명

이렇게 layered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관계를 알고 서강동을 보면, 단순히 ‘서강대 앞 동네’가 아니라, 한강과 철공·나루 문화가 켜켜이 쌓여 형성된 생활권이라는 게 좀 더 입체적으로 보인다.

6. 서강동의 자연·지형 – 강과 언덕, 그리고 와우산

지명 유래를 좀 더 분석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선 지형을 같이 보는 게 좋다. 서강동 일대에는 한강 본류와 더불어 와우산에서 내려오는 구릉 지형이 있다. 홍대 앞에서 내려다보면, 서강동 쪽으로 완만한 경사가 이어지다가 한강변에서 평평해진다. 이 구조 때문에 예전에는 서강동 곳곳에 작은 고개와 언덕 이름이 많았다.

마포 지명 자료를 보면, 신수동 경계 쪽에는 ‘서강고개’라는 이름이 있었다. 말 그대로 서강으로 넘어가는 나지막한 고개다. 또 신수동과 맞닿은 쪽에는 ‘붉은 언덕(홍현)’ 마을, ‘새우물거리’ 같은 소지명이 등장한다. 흙 색이나 새로 판 우물, 하천의 모양에 따라 붙었던 이름이다. 이런 자연지형은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 도로·주택지로 정비되었지만, 곳곳에 남은 골목 구조나 도로의 굴곡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한강과 와우산 사이의 이 완만한 골짜기 구조는, 서강동이 일찍부터 주거·공업·교통이 함께 존재하는 복합 생활권으로 자라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강에서는 물류와 수상교통이, 언덕에서는 주거와 농사가, 두 영역의 경계에서는 공방과 상업이 발달했다. 서강동 유래를 ‘강 이름에서 따왔다’는 한 줄로만 정리하면 놓치기 쉬운 부분이 바로 이 지형적 맥락이다.

7. 일제강점기 이후 – 철길과 공장, 그리고 서강역

20세기 들어 경의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서강동 일대 풍경은 한 번 더 크게 바뀐다. 지금의 서강대역 자리가 과거에는 ‘서강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화물·여객역이었던 시절이 있다. 일제강점기와 산업화 초기, 서강역 주변에는 공장·창고·철도 관련 시설이 밀집해 있었고, 한강 수운과 육상교통이 만나는 거점이었다.

지금도 경의선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옛 서강역과 연결된 선로 흔적, 작은 터널과 교량 등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요즘 블로그·유튜브 답사 콘텐츠에서 “서강역과 수철리, 무쇠막을 따라 걷는다”라는 제목으로 이 일대의 과거를 재조명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서강동이 단순한 주거지가 아니라, 한강·철도·도로가 만나는 교통 허브였다는 사실은 이 동네의 도시사에서 꽤 중요한 포인트다.

8. 오늘의 서강동 – 대학·카페·한강을 품은 생활권

현재 서강동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서강대학교다. 캠퍼스를 중심으로 원룸·고시원·카페·식당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홍대 상권과도 맞닿아 있어, 상수역·합정역 쪽까지 걸어서 이동하는 대학생·직장인 유동 인구가 상당히 많다. SNS에서 ‘서강동 카페 투어’ 같은 키워드로 검색해 보면, 주말마다 사람들로 붐비는 브런치 카페와 로스터리들이 꾸준히 소개되는 걸 볼 수 있다.

한편, 서강대교 북단·광흥창역 인근은 비교적 조용한 주거지로 남아 있다. 오래된 다세대주택과 재개발을 마친 아파트 단지가 섞여 있고, 경의선숲길·한강공원이 가까워 산책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평이 많다. 과거 광흥창 터 자리에는 이제 표석과 안내판만 남았지만, 출퇴근길에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서강동 유래를 알고 나면, 이런 공간들이 단지 ‘지나가는 길’이 아니라, 한강과 국가 재정, 관리들의 삶이 교차하던 역사 현장으로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9. 서강동의 유래가 주는 의미 – 한강 도시사의 축소판

정리해 보면, 서강동의 유래는 한강 도시화 과정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한강이라는 자연 지형 위에 나루와 창고가 생기고, 그 주변에 관리와 상인이 모여 살면서 마을이 자리 잡는다. 이후 철도와 공장이 들어오며 교통·산업의 허브로 기능했고, 다시 대학과 주거지, 상권이 결합된 생활권으로 변신했다. 그 모든 단계마다 ‘서강’이라는 이름은 강의 서쪽이라는 원래 의미를 유지한 채, 조금씩 다른 얼굴을 하고 우리 앞에 나타난 셈이다.

지명은 결국 장소에 대한 기억이다. 서강동이라는 세 글자 안에는 서강방, 서강면, 서강역, 서강 서반, 광흥창, 수철리, 무쇠막 같은 키워드들이 겹겹이 포개져 있다. 이걸 들여다보는 일은 단순한 향수 놀이가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도시와 동네를 이해하는 최소한의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흔히 지나치는 서강대교·서강대역·서강동 주민센터 같은 이름들이, 이제는 조금 다른 무게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10. 서강동을 걸을 때 기억하면 좋은 것들

마포 서강동을 한 번 천천히 걸어볼 생각이라면, 몇 가지 포인트를 머릿속에 넣어두면 좋다. 광흥창역 일대에서 ‘광흥창 터’ 표지를 찾아보고, 이곳이 조선시대 국가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였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자. 경의선숲길을 따라 옛 서강역 자리와 철길 흔적을 지나며, 한강 수운과 철도가 만나는 지점의 의미도 함께 상상해 보자. 서강대교를 건너기 전·후에 강 위에서 서강이라는 이름을 한 번 곱씹어 보는 것도 괜찮다.

도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서강동의 유래를 따라가 보면, 그 시간이 얼마나 길고 복잡했는지 조금이나마 감이 잡힌다. 이 동네를 스쳐 지나갈 때, 예전 서강 서반의 양반과 관리들, 무쇠막의 장인들, 광흥창의 쌀을 나르던 인부들, 그리고 오늘의 대학생과 주민들까지, 다양한 삶이 한자리에 켜켜이 쌓여 있다는 걸 함께 떠올려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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