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동의 유래와 역사: 성처럼 둘러싼 산에서 성미산 마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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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동의 유래와 역사: 성처럼 둘러싼 산에서 성미산 마을까지

마포구 성산동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성산대교, 그리고 월드컵경기장, 성미산 마을 정도일 겁니다. 그런데 정작 “성산동이 왜 성산동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 동네의 이름은 꽤 오래된 지형적 특징에서 나왔습니다. 주변 산들이 성(城)처럼 빙 둘러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성산(城山)’이고, 이 산에서 오늘날 성산동이라는 동명(洞名)이 파생되었습니다. 여기에 조선 후기 한성부 성저십리 체계, 일제강점기 경성부·고양군 연희면 성산리, 해방 이후 서대문구 성산동, 그리고 마포구 편입까지 행정 변천이 겹치면서 지금의 성산1·2동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글에서는 성산동이라는 지명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이 지역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되었는지, 그리고 성미산·성산지구·상암과 얽힌 생활사까지 차근차근 짚어보겠습니다.

1. ‘성처럼 둘러싼 산’에서 나온 이름: 성산·성메·성미

성산동 지명의 가장 뿌리는 말 그대로 ‘성산’, 즉 성(城)처럼 둘러싼 산입니다. 지금도 공식 지명으로 남아 있는 성산(城山)은 마포구 성산1동에 있는 해발 약 66m의 낮은 산으로, 예전에는 지금의 성산1동뿐 아니라 2동까지 연결된 능선 전체를 가리키던 이름이었습니다. 한자 표기인 城山은 문자 그대로 ‘성 같은 산’이라는 뜻이고, 이 산을 둘러싸고 있는 마을이 동명 ‘성산동’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산의 옛 우리말 이름입니다. 성산은 옛날부터 ‘성메’, ‘성미’라고도 불렸는데, 여기서 ‘메’와 ‘미’는 모두 ‘산’을 뜻하는 옛 토박이말입니다. 즉 ‘성미산’이라는 말 자체가 ‘성(같은) 산 산’이라는 식의 중복 표현이지만, 실제로는 정이 깃든 고유 지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오늘날 공동육아·대안학교·마을 운동으로 유명한 ‘성미산 마을’이라는 이름도 바로 이 토박이 이름에서 이어진 것입니다.

성산이라는 한자식 명칭은 조선 후기 지리지와 일제강점기 행정 문서에서 일관되게 등장합니다. 서울 성산동 관련 기록들을 정리해 보면, “부근의 산이 성처럼 둘러 있어서 우리말로 성메·성미라 부르던 것을 한자로 옮겨 성산이라 했다”는 설명이 반복됩니다. 즉, 원래 있던 순우리말 지명을 후대에 행정 편의를 위해 한자로 옮겨 적은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은 서울 곳곳에서 발견되는 전형적인 지명 탄생 패턴입니다.

동네 지명이 산 이름에서 나온 것도 자연스럽습니다. 원래 이 일대는 성산을 중심으로 한 구릉과 불광천·홍제천 변 저지대가 함께 펼쳐진 전형적인 교외 농촌 지형에 가까웠습니다. 주민들은 산 아래에 모여 살면서 그 산을 기준으로 마을을 불렀고, 이것이 행정구역 명칭으로 굳어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성산동’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원래 ‘성메 아래 마을’ 정도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조선 한성부 성저십리에서 연희면 성산리까지: 행정구역 변천사

성산동의 역사적 위치를 이해하려면, 먼저 이 지역이 조선 시대에 어떤 행정 구역에 속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 전기까지 성산 일대는 한성부 도성 밖, 이른바 ‘성저십리’에 해당하는 교외 지역이었습니다. 도성 서쪽을 중심으로 한 교외 농촌 지대로, 성안보다 상대적으로 개발이 더딘 곳이었습니다.

갑오개혁(1894) 이후 행정 체계 개편으로 한성부의 구획이 조정되면서, 이 지역은 ‘연희방’ 일대에 속하게 됩니다. 이어 1910년대 일제강점기 초기에 경성부와 고양군을 나누는 과정에서, 성산 일대는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 성산리(城山里)로 편입됩니다. 이 시기 문서들을 보면 “성산리계(城山里界)”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그 안에 자연취락으로 중동(中洞), 야지동(野芝洞), 후동(候洞), 무이동(武夷洞), 야동(冶洞)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914년 전국적인 부·군·면 정비 과정에서 연희면 성산리로 통합되었다가, 1936년에는 경성부 은평면 성산리로 조정되는 등 행정명칭이 세부적으로 자주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일관된 것은 ‘성산’이라는 리(里) 이름이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성산리’가 곧 이 일대 자연마을 전체를 지칭하는 기본 단위였던 셈입니다.

해방 이후 1949년, 서울시 관할구역 확장으로 성산리는 서울특별시에 편입되며 서대문구 소속 ‘성산리’가 됩니다. 1950년 3월 15일에 동·리 체계를 정비하면서 ‘성산동’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1975년 서울시 구(區) 경계 조정 때 서대문구에서 마포구로 편입되면서 지금의 ‘마포구 성산동’ 구도가 확정되었습니다. 이후 행정 편의에 따라 행정동은 성산1동·2동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 변천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흐름이 됩니다.

  • 조선 전기: 한성부 성저십리 교외 지역
  • 조선 후기: 연희방 인근 교외 취락
  • 1910년대: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 성산리
  • 1930년대: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 성산리
  • 1949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성산리
  • 1950년: 서대문구 성산동
  • 1975년: 마포구 성산동 (행정동 성산1·2동)

즉, 성산동은 마포구의 다른 동들처럼 갑자기 새로 만들어진 동네가 아니라, ‘성산리’라는 이름으로 오랜 기간 이어져 온 마을이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영역 안으로 점차 흡수되며 도시 동(洞) 단위로 바뀐 사례입니다.

3. 홍제천 직강공사와 성산지구 택지조성: 논밭에서 도시 주거지로

지명 유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 이름이 붙은 땅이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의 도시 풍경으로 바뀌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성산동 일대는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홍제천·불광천 주변의 논밭과 소규모 취락이 이어져 있는 전형적인 교외 농경지였습니다. 특히 홍제천이 구불구불 흐르던 시기에는 하천 주변에 저습지가 많아 농사가 주된 생업이었고, 물길을 따라 곡식을 흘려보내는 풍경이 익숙했습니다.

이 지형이 현재와 같은 도시 형태로 바뀌기 시작한 계기는 일제강점기 홍제천 직강(직강화) 공사였습니다. 굽이치던 홍제천의 물길을 반듯하게 펴는 하천 정비가 이루어지면서 주변 논밭에 대한 대규모 경지정리가 이루어졌고, 이 변화는 해방 이후 ‘성산지구 택지조성사업’으로 이어졌습니다.

성산지구 택지조성은 8·15 광복 후 서울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시기에, 교외 농지였던 성산리 일대를 주거지로 전환하는 대표적인 도시 개발 프로젝트였습니다. 불광천·홍제천을 따라 제방과 도로를 정비하고, 그 안쪽 땅에 도로망과 필지를 새로 그려 넣음으로써, 지금 우리가 보는 성산동 주거지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산의 형태도 바뀌었습니다. 원래 성산은 지금의 성산2동까지 길게 이어진 능선이었으나, 홍제천 직강공사와 도로 개설로 일부 능선이 잘려 나가 현재는 성산1동 쪽 주봉과 2동 쪽 ‘새터산’으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성산1동 쪽 산은 성산근린공원으로 정비되어 주민들의 쉼터가 되었고, 잘려 나간 쪽은 상암·월드컵경기장 개발과 함께 다시 도시의 일부로 편입되었습니다].

오늘날 성산2동 대부분은 주택지이며, 불광천 둔치에는 서부자동차검사소 등 기반시설이 들어서 있습니다. 불과 몇 세대 전만 해도 이 일대가 논밭과 하천뿐이던 곳이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성처럼 둘러싼 산 아래 논밭 마을”이 “성산대교와 월드컵경기장이 있는 도시 주거지”로 바뀐 시간의 속도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4. 성산동을 둘러싼 자연마을 이야기: 풀무골·야동·성미산 마을

지명이라는 것은 큰 행정 단위로만 보면 그중 많은 의미가 생략됩니다. 성산동이란 이름 아래에는 사실 여러 자연마을과 소소한 동네 이름들이 켜켜이 숨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풀무골’과 ‘야동’, 그리고 오늘날 ‘성미산 마을’로 이어지는 흐름입니다.

불광천 건너 상암동 방향으로 나가는 길목에 위치한 자연마을 ‘풀무골’은 한자로 ‘야동(冶洞)’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조선 효종 때 역모를 꾀했던 김자점이 군사 동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위조 엽전을 만들었는데, 이 엽전을 녹일 풀무간(쇳물을 녹이는 시설)을 이 일대에 설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 때문에 ‘쇠를 다루는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야동(冶洞), 그리고 우리말로는 풀무골이라는 이름이 굳어졌다고 전합니다.

성산동에는 이처럼 작은 자연마을들의 이름이 여럿 있었고, 행정 단위가 조정되는 과정에서 중동(中洞), 야지동(野芝洞), 후동(候洞), 무이동(武夷洞) 등으로 세분되었다가 다시 성산리·성산동 아래 묶이기도 했습니다. 이 이름들은 대부분 오늘날 공식 지도에서는 찾기 어렵지만, 일부는 골목 이름이나 노인들의 구술 속에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한편 ‘성미산 마을’이라는 이름은 1990년대 이후 공동육아·대안학교·지역운동 등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지역공동체를 지칭하는 말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이름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성산의 토박이 이름 ‘성미’에서 따온 것으로, 마포구 성산동·망원동 일대에 형성된 생활권을 포괄하는 문화적 지명에 가깝습니다. 성미산을 둘러싼 개발 갈등과 ‘성미산 지키기 운동’ 역시, 단순한 공원 보존을 넘어 이 지역의 정체성과 삶의 방식을 지키려는 시도였습니다.

이처럼 성산동의 지명 유래를 깊게 들여다보면, 단순히 “성처럼 둘러싼 산이 있어서 성산동”이라는 국어사전식 설명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다양한 자연마을과 주민들의 삶의 이야기가 함께 얽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5. 오늘의 성산동: 성산대교, 월드컵경기장, 그리고 ‘잠룡 동네’라는 이미지

현재의 성산동은 행정적으로 성산1동과 2동으로 나뉘며, 마포구 서쪽에 위치한 주거 중심 지역입니다. 동쪽으로 서교동·연남동, 서쪽으로 상암동, 남쪽으로 망원동, 북쪽으로 서대문구 남가좌동과 맞닿아 있습니다. 여기에 한강 위를 가로지르는 성산대교, 상암동 월드컵경기장과 인접한 입지, 6호선 마포구청역·디지털미디어시티역과의 접근성 등 교통·입지 조건만 놓고 보면 상당한 잠재력을 가진 동네입니다.

성산1동에는 성산근린공원과 성산(성미산)이 있어 녹지 공간이 풍부하고, 주변으로 초·중·고등학교가 밀집해 교육환경도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성산2동은 성산시영아파트를 비롯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단독·다세대 주택이 혼재된 전형적인 중산층 주거지로, 최근 재건축·리모델링 이슈로 부동산 시장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지역입니다.

유튜브·부동산 채널 등에서는 성산동을 한강변 재건축 ‘잠룡’ 지역 중 하나로 꼽기도 합니다. 성산대교 북단에 위치한다는 점, 마포·용산·성동 이른바 ‘마용성’ 중 하나인 마포구 내에 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재개발 여지가 크다는 점 때문에, 향후 서울 서북권의 스카이라인을 바꿀 후보지로 거론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지명 유래와는 별개로, 현재 성산동이 놓인 도시적·부동산적 맥락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동시에 성산동은 ‘성미산 마을’로 대표되는 대안적 삶의 방식, 공동체 실험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 마포공동체라디오 ‘마포FM’, 지역통화 ‘마포품앗이’ 등은 모두 성산동·망원동 일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 운동의 결과물입니다. 이런 흐름은 “성처럼 둘러싼 산 아래 마을”이라는 오래된 지명 이미지와, “서로를 돌보는 마을”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흥미롭게 겹쳐놓습니다.

6. 성산동 지명 유래가 주는 의미: 산 이름에서 도시 정체성까지

성산동의 유래를 정리해보면 결국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주변 산이 성처럼 둘러 있다고 해서 ‘성메, 성미’라 불리던 곳이 있었고, 이를 한자로 옮겨 ‘성산(城山)’이라 했습니다. 그 산 아래 마을이 ‘성산리’로 불리다가, 도시가 팽창하면서 ‘성산동’이라는 행정동 이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이 간단한 요약만으로는 성산동이라는 지명이 품고 있는 시간의 깊이를 다 담아낼 수 없습니다. 조선 시대 성저십리 교외 농촌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연희면·은평면 성산리로 편제되었으며, 해방 후에는 서대문구와 마포구 사이 경계 조정의 결과로 지금의 위치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 홍제천 직강공사와 성산지구 택지조성, 불광천 둔치 개발, 상암 월드컵경기장 조성, 성미산 마을 운동, 재건축 이슈까지 수많은 사건과 변환이 반복되었습니다.

지명을 안다는 것은 단지 “뜻풀이 한 줄”을 외우는 일이 아니라, 그 이름이 붙은 장소가 어떤 과거를 가지고 어떤 현재를 살고 있는지 조금 더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성산동이라는 두 글자 뒤에는 성처럼 둘러싼 작은 산, 그 아래 논밭 마을, 철길과 하천, 택지조성과 아파트 단지, 그리고 마을 공동체를 꾸려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이런 동네 단위의 지명 유래를 한 번쯤 곱씹어 보는 것도 나름 의미 있는 작업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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