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도동의 유래, 상여꾼이 모여 살던 ‘상투굴’이 행정용어 ‘상도(上道)’가 되기까지
서울 동작구 상도동은 요즘 기준으로 보면 숭실대·상도역·재개발·빌라촌 같은 키워드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이 동네 이름의 출발선은 꽤 다르다. 상도동(上道洞)의 지명 유래를 정리한 자료들을 보면 공통으로 등장하는 문장이 있다. “상도동이라는 이름은 옛날 이 지역에 상여꾼이 집단으로 거주하여 ‘상투굴’이라 부르던 데서 왔다.” 여기서 상여(喪輿)는 장례식 때 시신을 실어 나르는 들것, 상두(喪頭)는 그 상여를 메는 사람들이다. 이 상여꾼들이 어떤 이유로든 특정 골짜기에 모여 살았고, 사람들은 그곳을 상두굴·상투굴이라고 불렀다. 시간이 지나 관에서 행정적으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 구전 지명이 보다 온화한 한자어 ‘상도(上道)’로 바뀐다.
이 한자 조합 자체에는 두 가지 해석이 겹친다. 하나는 ‘윗길, 높은 길’이라는 지형적 의미다. 노량진·흑석·대방에 비해 상도 일대는 상대적으로 높은 구릉지대였다. 다른 하나는, 조선 후기 문헌에 나타나는 ‘성도화리(成道化里, 成桃花里)’ 같은 이상향 지명과의 연결이다. 성도화리는 문자 그대로 “도(道)를 이루어 교화되는 마을, 혹은 복숭아꽃이 만발한 마을”이라는 뜻을 갖는다. 즉, 상도동의 유래에는 상투굴이라는 다소 거칠고 음습한 구전과, 성도화리·상도리라는 다소 이상화된 한자 지명이 함께 들어가 있다. 이 글에서는 이 두 층위를 나눠 보되, 행정구역 변천·주요 지형·도시 변화까지 같이 엮어 상도동이라는 이름을 입체적으로 읽어보겠다.
1. 상투굴(상두굴) 설 – ‘상여꾼 마을’에서 비롯된 이름
상도동 지명 이야기를 다루는 블로그·지명 자료를 보면 거의 빠지지 않는 키워드가 상투굴이다. 상투굴, 상두굴, 상두골 등 표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으로 “상여꾼들이 집단 거주하던 골짜기”라는 설명이 붙는다. 상여꾼은 타인의 죽음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장례 문화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지만, 동시에 죽음·불길함과 결부되어 사회적으로는 미묘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 전통 사회에서 이런 직종 종사자들은 대개 마을 중심에서 약간 떨어진 골짜기·변두리에 모여 사는 경우가 많았다. 상투굴도 그러한 공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상투굴이 정확히 상도동의 어느 지점을 가리켰는지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지금의 상도1동 일대, 특히 숭실대학교 남·서쪽 구릉과 연결된 골짜기들을 상정하는 경우가 많다. 노량진·흑석에서 상도로를 따라 언덕을 올라오다가 갈라지는 여러 골짜기 가운데 하나에 상여꾼 집단이 자리 잡았고, 사람들이 “저기는 상두굴이다” 하고 불렀다는 것이다. ‘상두(喪頭)’가 반복 발음·변형을 거쳐 ‘상투’가 되었고, 다시 ‘굴·골’과 합쳐져 상투굴·상투골이라는 지명이 만들어졌다는 설명이다.
이 설은 상도동이라는 이름의 음(상도)과 직접 연결되지는 않지만, 이 지역의 사회적 출발점—죽음과 가까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던 마을—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이후 관청에서 이 구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상투굴이라는 이름은 행정 문서에 올리기에는 다소 거친 뉘앙스를 가진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상투(喪頭)와 발음이 비슷하면서도 이미 키워드로 존재하던 상도(上道)라는 한자 이름이 채택되었다는 추정이 힘을 얻는다. 다시 말해, “민간의 상투굴 → 관의 상도리/상도정 → 오늘날 상도동”이라는 흐름이다.
2. 상도리와 성도화리 – 조선시대 문헌 속 두 개의 마을
상도동의 유래를 문헌사 관점에서 보면, 상도리와 성도화리라는 두 이름이 중요하게 등장한다. 여러 자료를 종합하면, 조선시대 지금의 상도1동 일대는 상도리(上道里)로, 상도2·3·4동에 해당하는 남·서쪽 구역은 성도화리(成桃花里 또는 成道化里)로 불렸다. 상도리는 말 그대로 “윗길 마을” 정도로 읽힌다. 한강 변 노량진·흑석에 비해 한 단계 위쪽 구릉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는 지형적 특징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성도화리는 해석이 조금 갈린다. 桃花를 쓴 표기(成桃花里)는 “복숭아꽃이 만발한 마을”이라는 상당히 낭만적인 그림을 연상시킨다. 반면 道化를 쓴 표기(成道化里)는 “도(道)를 이룬 교화의 마을”이라는, 유교적 이상향 이미지에 가깝다. 어느 쪽이 본래인지는 논쟁 여지가 있지만, 두 글자 모두 “이 마을은 그냥 산골이 아니라, 뭔가 뜻을 이룬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은 같다. 상투굴·상여꾼 마을이라는 다소 음습한 이미지와, 성도화리·상도리라는 이상화된 이름 사이의 간극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지명은 현실과 이념을 동시에 반영하는데, 상도동의 유래에는 그 긴장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 두 마을은 행정적으로도 경계를 이루었다. 상도리는 한강·노량진 쪽으로 내려가는 길목을, 성도화리는 지금의 상도역·숭실대·장승배기 방면 고개와 연계된 내부 마을을 포괄했다. 이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정리에서 이 둘은 상도정(上道町)이라는 일본식 정(町) 단위로 통합되는 과정을 거친다. 이 시점부터 상도라는 이름이 상투굴·성도화리·상도리를 아우르는 상위 행정 명칭으로 자리 잡는다.
3. 한자 ‘상도(上道)’의 의미 – 지형적 설명 vs. 미화된 작명
상도동이라는 현재 이름만 놓고 보면, 많은 사람들이 ‘윗상(上), 길도(道)’를 그대로 읽어 “위쪽 길이 있는 동네” 정도로 이해한다. 실제 지형을 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한강변 노량진·흑석에서 상도 방향으로 올라오는 길은 상당한 고갯길이다. 지금도 상도로·장승배기로 언덕을 올라서면, 강변 평지보다 확실히 위쪽에 있다는 감각이 든다. “강변 마을(노량진) 위쪽의 길을 따라 형성된 동네”라는 설명은, 상도라는 글자와 잘 맞는다.
다만 이 해석만으로 지명 유래를 끝내기에는 약간 허전하다. 앞서 본 상투굴·상여꾼 설을 감안하면, 상도(上道)는 관에서 민간 지명을 ‘정돈’하는 과정에서 붙인 미화된 이름일 가능성이 크다. 상(喪)과 발음이 비슷한 상(上)을 쓰고, 길 도(道)를 붙여 “길 위쪽 마을”로 정리함으로써, 죽음과 장례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희석시켰다는 것이다. 여기에 성도화리(成道化里) 계열 이름이 함께 쓰이면서, 상도는 점점 “도(道)를 이루는 길, 윗길, 발전의 길”과 같은 긍정적 의미까지 덧입게 된다.
이런 방식은 다른 지명에서도 자주 보인다. 민간에서 쓰던 다소 험한 표현을 행정 편의·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순화한 케이스들이다. 상도동의 유래를 볼 때는, “상여꾼 마을 상투굴”이라는 구전과 “윗길 마을 상도리·성도화리”라는 문헌 기록을 동시에 염두에 두는 편이 현실에 가깝다. 전자는 이 동네의 사회적 출발점을, 후자는 관이 바라본 포장된 이미지를 보여준다.
4. 행정구역 변천 – 상도정에서 동작구 상도동까지
지명 유래를 시간축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에는 한성부 주변 지역으로, 지금의 상도1동은 상도리, 상도2·3·4동은 성도화리로 구분되었다. 1914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에서 이 일대는 경기도 시흥군 동면 상도리·성도화리 등으로 재편된다. 1936년 경성부 확장 때 이 지역 일부가 경성부에 편입되면서, 일본식 정명(町名)인 ‘상도정(上道町)’이 등장한다. 이 시점부터 상도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행정 지명 전면에 올라선다.
해방 이후 1946년에는 서울시 구 행정 체계가 정비되면서, 상도정은 영등포구 상도동으로 개칭된다. 1973년 관악구 신설로 잠시 관악구 상도동에 속했다가, 1980년 동작구가 영등포·관악 일부에서 분리 신설되면서 오늘날의 동작구 상도동 구조가 만들어진다. 행정동 차원에서는 인구 증가와 도시화에 따라 상도1·2·3·4동으로 세분되었고, 한동안 상도5동까지 운용되다가 2008년 상도1동에 통합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상도동이라는 이름은 상도리·성도화리·상도정을 계승한 법정동 이름이자, 상도1~4동을 포괄하는 상위 지명으로 굳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이 행정 변천 과정 내내 ‘상도’라는 핵심 한자 표기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상투굴이라는 구전 지명이 공식 문서에 제대로 남지 못한 반면, 상도리·성도화리에서 비롯된 상도 정·동은 행정체계 변화에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이어졌다. 지명이 갖는 ‘공식성’과 ‘비공식성’의 온도 차이가 여기서 드러난다.
5. 지형과 골짜기 이름들 – 살피재, 만양고개, 능꿀
상도동의 유래를 좀 더 입체적으로 보려면, 이 일대의 소지명(작은 지명)들도 같이 보는 게 좋다. 대표적으로 세 곳이 자주 언급된다. 첫째, 살피재. 상도1동 숭실대학교 아래 교차로에서 봉천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뜻한다. 이름 그대로 “살피고 넘는 고개”라는 의미다. 예전에는 이 고개 너머가 다른 고을과의 경계이자, 도둑·호랑이 등 위험 요소가 있을 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살피재를 넘기 전 주변을 잘 살피고 조심하라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
둘째, 만양고개. 상도2동 대림아파트 인근에서 노량진으로 내려가는 고개다. “고개가 워낙 길어서, 마냥 넘어간다”고 해서 만양고개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명이 있다. 실제로 상도에서 노량진으로 내려가는 길은 예전에는 상당한 비탈길이었고, 보행자·소달구지 모두에게 부담스러운 구간이었다. 셋째, 능꿀. 상도1동 상도성결교회 주변 일대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예전에 효령대군의 자제 서원군의 능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능의 흔적은 거의 찾기 어렵지만, 능꿀이라는 지명은 한때 왕가와 연결된 공간이었음을 암시한다.
이런 소지명들은 상도동이 단순히 “상여꾼 마을”만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보여 준다. 왕족의 능이 있었던 능지기 마을, 다른 고을과 연결되는 관문 고개, 노량진·봉천으로 이어지는 교통 요지 등, 다양한 기능이 겹쳐 있었다. 상도동의 유래를 상투굴 하나로만 축소해 보는 건 균형이 맞지 않는다. 상여꾼 마을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왕가 능지, 관문 고개, 도성 외곽 마을이라는 여러 얼굴이 동시에 존재했던 공간이 상도동이다.
6. 상도동의 도시적 변신 – 달동네, 대학가, 재개발
지명 유래가 과거 이야기로만 남지 않으려면, 현재 도시 구조까지 같이 봐야 한다. 상도동은 한강 평지와 비교해 지형이 험하고, 구릉과 골짜기가 많다. 이런 지형적 특성 때문에 1960~80년대 급격한 도시화 과정에서 ‘달동네’ 이미지가 강하게 붙었다. 노량진·흑석·대방에서 밀려난 서민층이 언덕 위·골짜기 곳곳에 판잣집·토막집을 지어 살았다. 상도동의 언덕길·계단길은 이때 만들어진 주거 패턴의 흔적이다.
동시에 상도동은 교육·대학가의 이미지도 함께 갖게 된다. 숭실대학교가 상도동으로 이전하면서, 대학·고등학교·중학교·초등학교들이 줄줄이 들어섰다. 상도역·숭실대입구역(옛 상도역) 일대에는 학원·원룸·고시원들이 들어섰고, 상도동은 “노량진과 봉천동 사이, 주거+교육+달동네가 뒤섞인 지역”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2000년대 이후 재개발·재건축이 진행되면서, 상도동의 주거 형태는 조금씩 바뀌고 있다. 아파트·주상복합·신축 빌라가 늘어나고, 언덕 위 판잣집은 줄어드는 추세다. 그러나 재개발 갈등·세입자 문제 등 도시 사회 문제도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이 흐름 속에서 ‘상도동’이라는 지명이 갖는 정서적 의미도 변해 왔다. 상여꾼 마을·상투굴이라는 어두운 출발점, 상도리·성도화리라는 이상향 지명, 달동네 이미지, 그리고 최근의 “재개발 예정지, 숭실대·상도역 주변 신축 아파트 동네” 이미지까지. 지명 하나가 시간에 따라 계속 새로운 의미층을 덧입는 전형적인 사례다.
7. 상도동의 유래를 오늘 읽는 이유
정리해보면, 상도동의 유래는 세 가지 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사회사적 축. 상여꾼이 모여 살던 상투굴·상두굴이라는 구전에서 출발한 동네라는 기억이다. 둘째, 행정·이념적 축. 상도리·성도화리, 상도정으로 이어지는 한자 지명에서 보이는 “윗길·도(道)·도화(桃花)” 등의 미화된 이미지다. 셋째, 도시·지형 축. 노량진 위쪽 구릉, 여러 고개와 능지, 달동네·대학가·재개발이 겹친 현재의 도시 구조다. 이 세 축이 서로 모순되면서도, 동시에 하나의 지명 안에 공존하고 있다.
지명을 안다는 건, 단순히 어원을 외우는 게 아니다. 그 공간을 둘러싼 권력·직업·죽음·이상향·빈곤·재개발 같은 키워드들이 어떤 순서로, 어떤 방식으로 덧입혀졌는지를 읽어내는 작업이다. 상도동의 유래를 알고 나면, 상도로를 올라가며 보이는 언덕길·골목길·학교·아파트들이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여러 시대의 레이어가 겹친 지도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상도동이라는 세 글자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들이 압축되어 있다. 그걸 한 번쯤 풀어보는 작업이, 결국 도시를 좀 더 깊게 이해하는 길이기도 하다.
#상도동의유래 #상도동지명유래 #상투굴 #성도화리 #상도리 #동작구상도동
'역사 > 7. 우리동네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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