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일동의 유래, 게내와 하일동에서 갈라진 강동 동쪽 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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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일동의 유래, 게내와 하일동에서 갈라진 강동 동쪽 관문

상일동의 유래, 게내와 하일동에서 갈라진 강동 동쪽 관문

상일동이라고 하면 보통 올림픽대로 끝자락, 상일IC, 고덕·강일로 이어지는 교차점, 그리고 상일동역과 대형 아파트 단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동네 이름의 뿌리를 따라가 보면, 이 지역은 본래 ‘게내(蟹川, 해천)’라는 작은 내(川)를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들이 모여 만들어진 곳이다. 상일동이라는 이름도 이 하천을 기준으로 ‘윗동네’를 가리키던 상일리에서 나온 것이다.

이 글에서는 상일동의 유래를 중심으로, 상일리·하일리 시절의 지명 구조, 고덕천(옛 게내)과의 관계, 조선 후기 광주군 구천면에서 서울 편입·강동구 신설에 이르는 행정 변천, 그리고 현대 상일동의 도시 이미지가 어떻게 겹쳐졌는지까지 차근차근 살펴보겠다. 강동문화포털, 강동구청 동주민센터 페이지, 지명 관련 블로그, 온라인 백과 자료를 함께 참고했다.

1. 상일동의 유래, 핵심은 ‘게내 위쪽 마을’

1-1. 공식 설명: 게내(해천) 위쪽에 있는 동네

강동문화포털과 강동구 상일1·2동 주민센터의 지명 안내를 보면, 상일동의 유래는 매우 분명하게 정리되어 있다. "상일동 동명은 상일동과 강일동의 사이를 흐르는 게내〔해천(蟹川), 오늘날의 고덕천〕의 위쪽에 있는 데서 유래되었다." 상(上)은 ‘위쪽’, 일(日)은 상·하일을 이루는 공통 글자, 동(洞)은 동네를 뜻하니, 문자 그대로 "게내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상일동이라는 이름이 어떤 특별한 인물이나 사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지형을 기준으로 한 방향 지명이라는 점이다. 아래쪽 마을은 하일동(下一洞, 현재의 강일동 전신)이고, 위쪽 마을은 상일동(上一洞)이다. 상일동의 유래를 이해할 때 이 상·하 구도가 기본 축이 된다.

1-2. 하일동(현 강일동)과 한 쌍으로 만들어진 이름

같은 강동문화포털 자료에는 강일동(옛 하일동)의 유래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요지는 이렇다. 상일동과 강일동 사이를 흐르는 게내 아래쪽에 위치한 마을이라 "아랫동네"라는 의미의 하일동(下一洞)으로 불렸다가, 동 이름에 ‘아래 하(下)’자가 들어가는 것이 싫다는 주민 민원으로 2000년에 강일동으로 개칭했다는 것이다.

이 구조를 놓고 보면, 상일동의 유래는 하일동과 한 쌍으로 묶여 있다. 게내 기준 윗동네=상일, 아랫동네=하일. 나중에 하일동이 강일동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지금의 상일·강일 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즉 상일동이라는 이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하일동·강일동과의 관계까지 함께 봐야 한다.

2. 상일동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상일리와 구천면 마을들

2-1. 1914년 광주군 구천면 상일리

온라인 백과와 강동구 지명유래 정리글에 따르면, 상일동의 유래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서 ‘상일리(上一里)’라는 이름이 만들어질 때 현재 형태에 가까워진다. 당시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에 속해 있던 게내, 게내안말, 동자골 등 여러 자연마을을 묶어 상일리로 통합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금암산에서 발원해 가려울 쪽으로 흘러드는 내를 게내라고 불렀고, 개가 많이 산다 하여 ‘게내’ 또는 한자로 해천(蟹川)으로 표기했다. 이 게내 주변 마을 중 위쪽 구역이 상일리, 아래쪽 구역이 하일리로 재편되었고, 이후 상일리·하일리가 바로 오늘날 상일동의 유래와 강일동(하일동)의 뿌리가 된다.

2-2. 상일동 안에 녹아 있는 옛 지명들

강동구 상일동 소개 페이지에는 상일동 권역 안에 포함되었던 옛 마을 이름들이 정리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지명이 등장한다.

  • 게내: 게냇가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 금암산에서 발원한 내 주변 마을을 가리킨다.
  • 게내안말: 게내 안쪽에 있던 마을.
  • 닥밭재: 예전에 닥나무(한지 제조 원료)를 많이 심었던 밭이 있는 고개.
  • 동자골(동자곡): 조선 명종 때 승려 보우가 이곳에 절을 짓고 동자부처를 모셨다고 해서 붙은 이름.

지금은 지도에서 이런 이름들을 찾기 어렵지만, 상일동의 유래는 사실상 이 옛 마을 이름들의 집합 위에 세워진 것이다. 상일동이라는 행정동 이름 하나 아래 과거 여러 소규모 마을의 기억이 묶여 있다고 보면 된다.

3. 상일동의 유래와 행정구역 변천

3-1. 조선시대 광주목·광주군 구천면

조선시대 기준으로 보면, 상일동 일대는 오늘날의 서울이 아니라 경기도 광주목 영역에 속했다. 이후 갑오개혁을 거치며 광주군으로 개편되었고, 당시 강동 일대는 광주군 구천면과 중대면 관할 아래 있었다는 설명이 강동구 지명유래 자료에 정리되어 있다.

이런 배경에서 보면, 상일동의 유래는 서울의 동네 이름이라기보다 원래는 광주군 외곽 농촌 마을 이름으로 출발했다. 서울 동쪽 끝이라는 현재의 이미지와 "광주 외곽의 게내 주변 마을"이라는 과거 이미지는 행정 경계가 바뀌면서 겹쳐진 결과다.

3-2. 1963년 서울 편입과 이후 흐름

1963년 대규모 서울 확장으로 광주군 일부가 서울특별시에 편입되면서, 상일리·하일리도 서울 행정권 아래 들어온다. 이후 성동구 관할을 거쳐 1975년 강남구 신설, 1979년 강동구 분구 과정을 통해 상일동은 현재의 강동구 소속 동으로 정착한다.

한 줄로 정리하면, 상일동의 유래는 "광주군 구천면 상일리 → 서울 성동구 구천동 일대 → 강남구 상일동 → 강동구 상일동"으로 이어지는 행정 변천과 함께 굳어진 셈이다. 이름은 비교적 일찍 상일리로 정해졌고, 도시가 커지면서 구·동 단위만 바뀌어 온 구조다.

3-3. 상일1동·상일2동 분동

최근 행정 구역 기준으로는 상일동이 다시 둘로 나뉜다. 나무위키와 강동구청 공지에 따르면, 2021년 7월 1일부터 기존 행정동 상일동 중 일부가 분리되어 상일2동이 신설되었고, 기존 상일동은 상일1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인구 증가와 주거단지 확대에 따른 행정 편의 조정이다.

다만 법정동 이름으로서 상일동은 그대로 유지되고, 행정동만 상일1·2동으로 나뉜 구조다. 상일동의 유래라는 관점에서 보면, 게내 위쪽 마을이라는 기본 의미는 그대로인 채, 세부 행정 단위만 조정된 셈이다.

4. 상일동의 유래를 둘러싼 주변 맥락

4-1. 고덕천(게내, 해천)이라는 축

상일동·강일동·고덕동·명일동 일대를 하나의 지도로 놓고 보면, 고덕천(옛 게내·해천)이 동네의 골격을 형성한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게내는 금암산에서 발원해 가려울(현재 강일동 일대)로 흘러드는 작은 하천으로, 예전에는 게가 많이 살아 ‘게내’라고 불렀고, 한자로는 해천(蟹川)으로 썼다.

상일동의 유래는 이 하천을 기준으로 위쪽과 아래쪽을 가르는 방식에서 나왔고, 하천 아래쪽 마을은 하일동(현재의 강일동 전신)으로 불렸다. 지금은 고덕천이라는 이름으로 정비되어 수변공원과 산책로 형태로 남아 있지만, 지명 속에 ‘게내’라는 흔적이 여전히 공식 기록으로 남아있다.

4-2. 상일리 만세광장, 3·1운동의 기억

강동문화포털에는 상일리 만세광장이라는 공간이 별도 항목으로 소개된다. 위치는 상일동 511, 게내수변공원 3호 내에 자리하고 있으며, "옛 상일리 헌병주재소(현재 상일동 259 일대 농협 자리)"에서 벌어진 3·1운동 만세 시위를 기념하기 위한 공간이다.

이런 맥락에서 상일동의 유래는 단순한 지리적 명칭을 넘어, 일제강점기 상일리 지역에서 벌어진 독립운동의 기억과도 연결된다. 3·1운동 당시 상일리 주민들이 주재소 앞에서 만세를 외쳤고, 그 공간을 지금 만세광장이라는 이름으로 남겨 지역 정체성과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4-3. 고덕·명일·강일과의 지명 연쇄

강동구 지명유래 자료를 차례로 읽어보면, 상일동만 떼어놓고 보기보다는 고덕동, 명일동, 강일동과 함께 묶어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명일동은 고려 성종 때 출장 관리와 행인에게 숙소를 제공하던 명일원(明逸院)에서, 고덕동은 고려 말 형조참의 이양중의 절개와 ‘고다지동’에서, 강일동은 하일동에서 이름을 바꾼 사례로 각각 설명된다.

이 흐름에서 보면 상일동의 유래는 그 중 가장 ‘단순한’ 축에 속한다. 특정 인물이나 시설이 아니라, 하천 기준 위쪽 마을이라는 아주 직관적인 기준에서 나온 이름이다. 대신, 이 단순함 덕분에 상·하일 구조와 지형적 관계를 파악하기가 오히려 더 쉽다.

5. 상일동의 유래가 오늘의 상일동을 보는 시각에 주는 힌트

5-1. ‘끝동네’에서 ‘동쪽 관문’으로

예전 상일·하일동은 서울 외곽, 더 거슬러 올라가면 광주군 구천면 변두리 농촌 마을이었다. 교통이 좋지도 않았고, 한강과 인접한 저지대 특성 때문에 수해 위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일동은 올림픽대로와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수도권 제1순환선), 5호선 상일동역·강일역, 고덕비즈밸리와 맞닿은 지점으로서 "강동·하남·고덕 개발축의 동쪽 관문"이라는 위상을 갖게 됐다.

상일동의 유래를 알고 보면, 이 변화를 조금 다르게 읽을 수 있다. 게내 위쪽 마을이라는 자연지형 기반 이름을 유지한 채, 그 위에 대규모 주거단지와 교차로, 산업단지가 얹힌 구조다. 옛 상일리의 감각과 지금 상일동의 기류가 시간차를 두고 겹쳐진 셈이다.

5-2. 이름과 실제 생활권의 간극

흥미로운 점은, 하일동이 ‘강일동’으로 이름을 바꾼 것과 달리 상일동은 ‘상일동’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점이다. 하(下)에 대한 심리적 열등감은 강일동에서 문제로 제기됐지만, 상(上)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긍정적 이미지로 받아들여졌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실제 생활권을 보면, 지금은 강일동도 신도시급 아파트와 인프라 덕분에 "하"라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고, 상일·고덕·강일 일대 전체가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여 있다. 상일동의 유래를 기준으로 한 상·하 구분은 행정·지명 체계 안에서는 여전히 의미가 있지만, 일상에서는 상당 부분 희미해지고 있다는 점도 같이 볼 필요가 있다.

5-3. 옛 마을 이름을 기억하는 의미

게내, 게내안말, 동자골, 닥밭재 같은 이름은 지금 세대에게는 낯설지만, 지명유래 자료에 꾸준히 기록으로 남아 있다. 상일리 만세광장, 게내수변공원 같은 공간은 이 이름들이 단순 텍스트를 넘어 현재 공간으로 연결되도록 설계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상일동의 유래를 알고 나서 상일동을 걸어보면, 단지 아파트 단지가 늘어선 베드타운이 아니라, 게내를 중심으로 형성된 옛 마을과 3·1운동 현장, 그리고 서울 동쪽 확장의 교두보가 뒤섞여 있는 입체적인 공간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지명을 안다는 건 단순한 정보 이상으로, 그 동네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프레임을 갖는 일이다.

정리

상일동의 유래를 한 줄로 정리하면 "게내(해천, 현 고덕천)를 기준으로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상일리라 부른 것이, 서울 편입 이후 상일동으로 굳어진 것"이다. 하일리(현재의 강일동 전신)와 짝을 이루며 광주군 구천면 시절부터 이어져 온 이 구조는, 1914년 리 단위 통합과 1963년 서울 편입, 1979년 강동구 신설 이후에도 기본 골격을 유지해 왔다.

이름 자체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는 게내 주변의 농촌 마을들, 상일리 헌병주재소와 3·1운동, 강일동 개명, 강일·고덕·명일과 이어지는 지명 연쇄, 그리고 오늘날 동쪽 관문 상일동의 도시적 위상까지 겹쳐 있다. 상일동을 지나며 "게내 위쪽 마을"이라는 출발점을 한 번 떠올려 본다면,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동네가 조금 다르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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