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동의 유래

서울 남서부의 구로동은 지금 기준으로는 IT·물류·주거가 뒤섞인 평지 도시 공간이지만, 지명만 놓고 보면 굉장히 고전적인 냄새가 난다. 九老라는 한자를 그대로 읽으면 “아홉 노인”이다. 구로구청, 구로문화원, 구청 공식 사이트 등에서는 이 한자 풀이에 맞춘 “옛날 이곳에 아홉 명의 장수한 노인이 살았다”는 전설을 공식 유래로 소개한다.
그런데 지명사를 조금만 파고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조선시대 문헌에 등장하는 ‘구로리(九老里)’,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 ‘구루지’라는 자연 마을 이름, ‘구레·갈계’ 같은 토박이말, 심지어 중국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향산구로회(香山九老會)까지, 구로라는 이름을 설명하는 여러 층위가 한꺼번에 얽혀 있다. 이 글에서는 그 층위를 하나씩 정리해 본다.
1. 행정구역 속 구로동: ‘구로리’에서 구로동까지
1) 조선시대: 금천현 상북면 구로리
구로문화원과 지명 해설 블로그들을 종합하면, 구로라는 이름은 최소 18세기 후반 문헌에서 확인된다. 조선 영조대까지는 이 일대가 경기도 금천현 상북면 구로 1·2리로 기록되어 있었고, 정조 19년(1795년) 금천현이 시흥현으로 개칭되면서 시흥군 상북면 구로리가 되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즉, 구로라는 지명은 서울 편입 훨씬 이전부터 경기도 남부 농촌·하천 마을 이름으로 존재했다는 얘기다.
이후 1914년 조선총독부령 제111호로 전국 면·리 명칭이 대대적으로 손질될 때, 이 지역은 경기도 시흥군 북면 구로리로 편제된다. 1936년 영등포 일대가 경성부에 편입될 때도 구로리는 제외되어 계속 시흥군 동면 구로리로 남는다. 즉, 구로는 한동안 ‘경기도 시흥군 구로리’라는 행정 단위로 존재했고, 서울 외곽 농촌이자 늪지대에 가까운 지역이었다.
2) 서울 편입과 구로동·구로구의 탄생
해방 이후 도시 팽창과 함께 서남부 개발이 진행되면서, 시흥군 일부가 서울 영등포구로 편입된다. 구로리 일대는 서울 강서 벨트의 공업·주거지로 재편되며, 한자 표기도 ‘구로동(九老洞)’으로 바뀐다. 1980년 영등포구에서 분구(分區)할 때, 대표 동 이름을 따서 ‘구로구’라는 구 이름이 만들어진 것도 이 시점이다.
구로타임즈 기사에 따르면, 당시 분구 과정에서 “구로공단”이라는 명칭이 널리 쓰이고 있었고, 구로동이 지역에서 가장 큰 대표 동이었기 때문에, 구 전체 이름을 구로구로 정했다는 설명이 나온다. 즉, 지금 우리가 말하는 구로구는, 원래 시흥군 구로리라는 하나의 자연·농촌 마을 이름이 도시 확장과 함께 행정구 전체 이름으로 스케일업 된 결과다.
2. 공식 유래: “아홉 노인의 마을” 전설
1) 구청·백과·위키가 채택한 스토리
가장 널리 알려진 구로동 유래는 한자 뜻 그대로의 풀이, 즉 “아홉 노인이 장수한 마을”이다. 구로구청 공식 홈페이지는 “옛날 이 마을에 9명의 장수한 노인이 있었다는 전설에서 동명이 유래하였다”고 명시하고 있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역시 “구로동의 동명은 옛날 이 마을에 아홉 노인이 오랫동안 살았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라고 정리한다. 위키백과도 “옛날 이곳에 9명의 장수한 노인이 있었다는 전설에서 이름이 왔다”는 서술을 기본 설명으로 채택하고 있다.
지역 언론인 구로타임즈의 ‘우리동네 이야기’ 연재에서도 “구로구(九老區) 유래처럼 옛날 이 지역에 9명의 장수한 노인이 있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동일한 설명을 싣고 있다. 관공서·백과·지역 언론이 같은 스토리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적어도 ‘공식 내러티브’ 차원에서는 이 설이 1순위다.
2) 전설 디테일 버전: ‘구루지’의 아홉 노인
구로타임즈는 여기에 조금 더 디테일을 붙인 버전을 소개한다. 옛날 ‘구루지’라는 마을에 아홉 명의 노인이 살았는데, 마을 지대가 낮아 안양천·도림천 범람 때마다 홍수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큰 홍수가 날 때마다 주민들은 높은 곳으로 피난을 갔지만, 어느 해에는 아홉 노인이 끝까지 마을을 지키다 홍수 속에서도 살아남았고, 그 장수·의지에 감복해 “아홉 노인(九老)의 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식이다.
실제 당시의 기록을 검증하기는 어렵지만, 이 버전은 지형·하천 상황과 맞물린다는 점에서 동네 전설로는 나름 그럴듯하다. 안양천과 도림천이 만나는 늪지·저지대라는 조건, 그리고 아래에서 다시 다룰 ‘구루지’ 자연마을의 존재가 전설의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3. 문인 설화: 백거이의 ‘향산구로회’에서 따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구로동 유래에 대해 한 가지 설을 더 적어둔다. 중국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낙양 용문산 동쪽에 석루를 짓고 시인 8명과 함께 시회(詩會)인 ‘향산구로회(香山九老會)’를 만들어 즐긴 것을 아름답게 여겨, 그 이름에서 지명을 따왔다는 설이다. 요약하면, “문인들이 동네 이름에 문학적 상징을 입히려고 중국 고사를 가져왔다”는 식의 설명이다.
실제로 조선시대 양반·유학자들이 중국 문학·고사를 동네 이름, 정자 이름, 서원 이름에 차용하는 일은 흔했다. 다만, 구로는 원래부터 민간 농촌 마을 이름으로 쓰이던 ‘구로리’를 조선 후기 유학자들이 갑자기 ‘향산구로회’와 연결해 해석했는지, 아니면 후대에 나온 후설(後說)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문헌 근거가 부족하다. 현재로서는 “한 설에 불과하고, 상징적 해석에 가깝다” 정도로 보는 게 안전하다.
4. 토박이말·지형 설: ‘구레·구루지·갈계’의 계통
1) ‘구루지’ 자연 마을에서 온 이름
네이버 블로그와 구로문화원 자료를 보면, 구로동 가운데 가장 오래된 마을로 ‘구루지 마을’이 언급된다. 하구로리(下九老里)의 옛 이름으로, 지금의 구로5동사무소 동남쪽 일대가 이에 해당한다는 설명이 있다.
위키백과도 “구로동의 자연부락 이름인 ‘구루지’(혹은 구르지)를 한자화해 ‘구로’로 표기했다는 해석이 있다”고 적고 있고, 나무위키 역시 “골짜기(갈) + 시냇물(계) 의미의 ‘갈계’가 구르·고르·구루지로 변형되고, 이것이 한자화되며 구로가 되었다는 설”을 소개한다. 즉, “먼저 구루지라는 토박이말 마을이 있었고, 그 발음을 맞추어 九老라는 한자를 입혔다”는 계통도다.
2) ‘구레’·‘갈’ 계열: 늪지·골짜기 지형 설명
또 다른 계통으로, 구로타임즈는 “구로는 옛날 안양천과 도림천이 만나 늪지가 형성된 곳이라 ‘구덩이’를 뜻하는 ‘구레’에서 지명이 나왔다는 설”을 소개한다. 일제시대 한자 표기 과정에서 구레 발음과 비슷한 한자를 찾다가 九老로 옮겨졌다는 주장이다. 이 설은 일본 강점기 행정이 전국 지명을 대량으로 한자화하는 과정에서 의미와 상관없이 발음만 맞춰 가져온 사례가 많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같은 기사에서 또 다른 전승도 인용한다. ‘구로의 본래 지명은 우리말 ‘갈’에서 나왔다’는 설이다. ‘갈’에서 파생된 가라·굴·골·고르 등은 강·골짜기·갈린 곳 등을 뜻하는 고어 계열인데, 구로 역시 이런 토박이말 계통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나무위키의 ‘갈계→구루지→구로’ 변형설과도 서로 연결되는 지점이다.
3) 아홉 노인 설은 “후대 한자 풀이”일 가능성
구로타임즈는 구청 관계자 인터뷰를 인용해 흥미로운 뒷이야기를 전한다. 1980년대 영등포구에서 구로구로 분구하면서, 새 구 이름의 의미를 설명할 필요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九와 老라는 한자 뜻풀이를 맞춰 “아홉 노인의 전설” 이야기가 행정기관에서 정리·보급되었다는 것이다.
즉, 순서를 뒤집어 보면 이렇다. 먼저 ‘구루지·구레·갈계’ 같은 토박이 지명이 있었고, 일제·해방 이후 한자화되며 九老라는 표기가 선택되었다. 이후 분구와 함께 “이름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행정·홍보 논리 속에서 아홉 노인·향산구로회 같은 상징적 이야기가 후대에 덧입혀졌을 가능성이다. 어느 한쪽만 진실이라고 보기보다는, 토박이말·지형 설명 위에 한자 풀이와 문인 고사가 여러 겹으로 얹힌 구조라고 보는 편이 더 현실적이다.
5. “九老”를 둘러싼 여러 어원설 비교
| 설의 유형 | 내용 | 근거·출처 | 평가 |
|---|---|---|---|
| 아홉 노인 설 | 옛날 이 마을에 아홉 명의 장수한 노인이 살았고, 그 전설에서 九老라는 지명이 나왔다. | 구로구청·구로문화원 공식 설명, 민족문화대백과, 지역 언론. | 공식·관광용 스토리로는 안정적. 다만 구체 문헌 근거는 전설 수준. |
| 구루지 한자화 설 | 본래 마을 이름은 ‘구루지’(구르지)였고, 이를 한자로 표기하며 발음이 비슷한 九老로 적게 되었다. | 구로문화원·지명 유래 블로그·위키의 자연부락 설명. | 실제 자연마을 이름이 존재했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높다. |
| 구레(구덩이)·늪지 설 | 안양천·도림천 합류부 늪지대라, 구덩이·웅덩이를 뜻하는 ‘구레’에서 지명이 나왔고, 나중에 九老로 바뀌었다. | 구로타임즈 지역 구전·지형 설명. | 하천·저지대 지형과 잘 맞지만, 한자 변경 과정은 추정 단계. |
| 갈·갈계 어원설 | 골짜기·갈라진 땅을 뜻하는 ‘갈’ 계열(가리·골·고르 등)에서 출발해 ‘갈계→구르→구루지→구로’로 변형되었다. | 구로타임즈·나무위키 등 어원 추정. | 국어사·지명학에서 자주 쓰이는 패턴과 구조적으로는 일치. |
| 향산구로회 차용설 |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향산구로회(香山九老會)’에서 따온 이름이다. | 민족문화대백과의 보조적 설. | 조선 유학자식 네이밍 방식과는 맞지만, 시점·문헌 근거는 희박. |
정리하면, “아홉 노인이 살았다”는 이야기는 오늘날 행정·관광에서 채택한 간결한 스토리이고, 실질적인 어원은 ‘구루지·구레·갈계’ 같은 토박이말 지명에서 출발했을 가능성이 높다. 九老라는 한자어는 그 위에 뒤늦게 입혀진 포장에 가깝다고 보는 쪽이, 지형·언어·역사 자료를 동시에 맞춰볼 때 더 설득력이 있다.
6. 구로동의 지형·생활사와 이름의 상관관계
1) 안양천·도림천 합류부라는 조건
구로동 일대는 원래 안양천과 도림천이 만나 늪지대를 이루던 저지였다. 구로타임즈는 “예전에 안양천과 도림천이 만나 늪지가 형성된 곳이었다”는 지역 구전을 그대로 싣고 있고, 구로문화원 지명 설명에서도 구로·가리봉·항동 등 여러 동명의 유래가 지형·하천과 강하게 결합해 설명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지형을 고려하면, 구덩이(구레), 갈래진 땅(갈, 가리), 골짜기와 물길(갈계) 같은 토박이말이 초기에 쓰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같은 구로구 안에서도 가리봉동은 작은 봉우리들이 이어져 생긴 마을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거나, ‘갈·가리’에서 유래했다는 어원설이 병존한다. 구로·가리봉·항동 모두가 지형·토박이말·한자 풀이가 겹쳐 있는 구조라는 점에서, 구로동 어원도 같은 계열로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2) 농촌·공업지·주거지로의 변신과 ‘구로’ 브랜드화
해방 이후 구로는 서울 외곽 농촌에서 공업지·주거지로 빠르게 변신한다. 구로공단(현 구로디지털단지)이 조성되면서, ‘구로’라는 이름은 단순한 동네 이름을 넘어 한국 수출산업의 상징 브랜드처럼 쓰인다. 1980년대 구 분구 시점에 “구로공단”이라는 이름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고, 따라서 새 구 이름을 ‘구로구’로 정하는 데 별 이견이 없었다는 설명이 지역 기사에서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구로의 지명 이야기도 재정비된다. 기업·근로자·신도시 입주민에게 설명하기 쉬운 스토리가 필요했고, “아홉 노인이 장수했다”는 긍정적 상징, “중국 고사에서 따온 품격 있는 이름” 같은 요소가 후대에 덧입혀진 셈이다. 원래의 늪지·저지·홍수·구루지 같은 키워드가 갖는 다소 부정적 이미지를 상쇄하기 위한 서사 정치라고 봐도 무방하다.
7. 구로동 이름에서 읽을 수 있는 몇 가지 함의
첫째, 구로동 사례는 “지명은 한 번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토박이말로 불리던 마을 이름 위에 한자가 입혀지고, 다시 그 한자에 맞는 전설과 고사가 덧씌워지며, 마지막으로 행정·브랜딩 차원의 스토리텔링이 보강된다. 현재 우리가 보는 “아홉 노인의 구로동”은 이 긴 과정의 마지막 레이어에 가깝다.
둘째, 한자 지명은 반드시 의미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구로의 경우 “발음(구루지·구레 계열) → 한자 선택(九老) → 의미 부여(아홉 노인·향산구로회)”의 순서일 가능성이 크다. 이건 다른 서울 지명, 예를 들어 개봉(蓋峰), 오류(梧柳), 신도림(新道林) 등에도 상당 부분 적용되는 패턴이다.
셋째, 지역 정체성을 만드는 데 있어서 “어떤 설을 선택해 홍보하느냐”는 순수 학술 문제를 넘어 정치적 선택이기도 하다. 구로구가 공식적으로 아홉 노인 설을 채택한 것은, 구로를 오래된 농촌·늪지 대신 “장수·지혜·품격”의 이미지로 포장하려는 선택으로 읽을 수 있다. 반대로, 지역 지명사를 다루는 입장에서는 그 이면에 깔린 구루지·구레·안양천 늪지 이야기를 함께 살려두는 편이 균형 잡힌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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