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산동의 유래 – 밥주발 같은 수명산에서 나온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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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산동의 유래 – 밥주발 같은 수명산에서 나온 이름

발산동의 유래 – 밥주발 같은 수명산에서 나온 이름

서울 강서구 한복판에 있는 발산동. 지금은 5호선 발산역, 마곡지구, 운전면허시험장 덕분에 서울 서남부 교통의 관문 같은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 동네의 이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꽤 묵직한 지형 이야기가 숨어 있다. 발산동의 유래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밥주발을 엎어놓은 것 같은 산에서 나온 이름”이다. 이 산이 바로 오늘날 수명산(壽命山)이고, 조선시대 문헌에는 파려산(波麗山)·발산(鉢山)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럼 “발산(鉢山)”이라는 지명이 언제부터,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발산동으로 이어졌을까. 단순히 동네 이름 풀이 수준을 넘어서, 조선시대 양천현 가곡면 시절부터 김포군, 영등포구를 거쳐 강서구에 이르기까지의 행정 변화를 함께 봐야 발산동의 유래가 선명해진다. 지형, 한자, 문헌 기록, 행정사 네 가지 축을 기준으로 발산동을 분석해 보겠다.

1. ‘발산(鉢山)’이라는 이름 – 밥주발을 엎어놓은 산

발산동의 유래에서 가장 먼저 짚어야 할 대목은 한자 표기다. 발산동은 본래 산 이름인 발산(鉢山)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鉢(발)은 절에서 스님들이 공양을 받을 때 사용하는 밥그릇, 즉 발(鉢) 또는 밥주발을 뜻한다. 산(山)은 말 그대로 산이다. 즉 발산은 “밥주발 같은 산”이라는 의미다.

강서구 동이름 유래를 정리한 자료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보면, 이 지역의 주산인 수명산의 옛 이름이 발산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산 모양이 밥주발을 엎어놓은 것처럼 완만한 능선과 둥근 봉우리를 이루고 있어서 발산(鉢山)이라는 지명이 붙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수명산이라는 이름이 정착했지만, 산 이름으로 쓰이던 발산은 주변 마을 이름으로 남아 오늘날 발산동의 유래가 되었다.

이 ‘밥주발 같은 산’이라는 설명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수명산·발산 일대의 지형을 실제로 보면, 날카롭게 솟은 봉우리라기보다 넓게 펼쳐진 둥근 구릉과 완만한 경사로 이루어져 있다. 산 정상부에서 남·북·동·서 어느 방향으로 내려가도 비교적 완만하게 흘러내리는 형국이라, 위에서 내려다볼 때 둥근 그릇처럼 보인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발산동의 유래를 생각하면서 수명산 정상에서 주변을 한 번 둘러보면, 이 밥주발 비유가 꽤 정확한 지형 묘사라는 걸 이해하게 된다.

2.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등장하는 ‘발산’

발산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구전이 아니라 조선시대 지리지에도 등장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경기도 양천현 부분에 “발산(鉢山)”이라는 지명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최소 16세기 이전부터 “발산”이라는 산 이름이 공식 문헌에 올라 있었다는 의미다.

이 문헌 기록은 발산동의 유래가 현대 들어 즉흥적으로 붙은 신조어가 아니라, 적어도 400~500년 이상 이어진 지명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특히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지리지로, 당시 지방 행정·지형 정보를 정리한 국가 기록이다. 여기 등장하는 발산(鉢山)은 오늘날 수명산과 같은 산을 가리키며, 이 산 주변 마을이 나중에 발산동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정리하면, 발산동의 유래를 가장 오래된 문헌으로 끌어올려 보면 “양천현의 산 중 하나인 발산(鉢山)이 있었고, 이 산의 이름이 주변 마을 이름, 나아가 현대의 동 이름으로 이어졌다”는 구조가 된다. 산 이름이 먼저, 동 이름이 나중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3. 수명산·파려산·발산 – 산 이름의 변천과 동네 이름

지금은 모두 수명산(壽命山)이라는 이름에 익숙하지만, 이 산은 시대와 문헌에 따라 여러 이름을 가졌다. 파려산(波麗山), 발산(鉢山), 그리고 수명산이다. 특히 발산동의 유래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이름은 발산이다.

오늘날 내발산동·외발산동·발산동이라는 지명은, 이 발산이라는 산을 기준으로 안쪽과 바깥쪽 마을을 구분하는 방식에서 비롯되었다. 산 안쪽 마을을 내발산동, 산 바깥 마을을 외발산동이라 불렀고, 산 전체 또는 그 인근을 포괄하는 이름으로 발산동이 사용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이 마을의 주산인 수명산의 모습이 주발처럼 생겼으므로 ‘발산(鉢山)’이라는 데서 동명이 유래하였다. 발산의 안쪽이 내발산동, 바깥이 외발산동이다”라고 정리하고 있다.

이 설명을 그대로 풀어보면, 발산동의 유래는 산 이름의 인칭화다. 산이 먼저 이름을 갖고, 마을은 그 산의 ‘안쪽(內)’과 ‘바깥(外)’이라는 위치 정보로 이름을 나눴다. 그 위에 행정구역화 과정에서 발산동이라는 큰 범주가 올라앉은 구조다. 즉 발산동의 유래를 따질 때 “내발산동과 외발산동의 기준이 되는 중심 축은 수명산/발산”이라는 점을 기억해 두어야 한다.

4. 발산동의 유래에 대한 다른 해석 – ‘큰 마을’설

지명 연구를 조금 더 파고들면, 발산동의 유래에 대한 다른 해석도 나온다. 일부 한글·지명 관련 글에서는 “발산(鉢山)을 ‘밥주발 산’으로만 보지 말고, 고어 ‘발/밝’이 ‘크다, 넓다’를 의미하는 맥락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발산은 “큰 산, 큰 마을 근처의 산”이라는 개념에 가깝다는 것이다.

또 다른 글에서는 발산동의 유래를 순우리말과 한자의 혼성으로 해석한다. “발”이 ‘바루’(고평지), ‘밝’(밝은 곳, 높은 곳)에서 왔고, “산”이 그대로 산이니, 본래 “밝은 산, 높은 들판 같은 산”이라는 의미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한자로 옮길 때 발(밥그릇)과 산(山)을 가져와 鉢山으로 표기했다는 설명이다.

이런 해석들은 학계의 정설이라고 보기에는 과감한 부분이 있지만, 발산이라는 지명의 어감과 실제 지형(둥글고 완만한 구릉)이 잘 맞는다는 점에서 보조 설명으로 참고할 수 있다. 다만 공식적인 행정·지명 자료에서는 “밥주발 같은 산”이라는 鉢山 해석을 발산동의 유래로 채택하고 있다는 점을 전제로 두고 보는 게 안전하다.

5. 조선시대 발산 일대 – 양천현 가곡면의 산 아래 마을

발산동의 유래를 행정구역 관점에서 보면, 조선시대 이 지역은 경기도 양천현 가곡면에 속해 있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와 여러 지명 해설 블로그를 보면,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발산’이라는 지명이 나오며, 당시 발산은 양천현 가곡면 지역”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양천현은 지금의 양천구·강서구·구로구 일부를 포함하는 고을이었고, 그 아래 가곡면·남산면 등 여러 면이 있었다. 발산·수명산 일대 마을들은 가곡면에 속한 산 아래 농촌 마을이었다. 당시 이 지역은 한강이 가깝고 토지가 비옥해 벼농사와 밭농사가 모두 가능했고, 산비탈에는 땔감과 목재를 얻을 수 있는 산림이 있었다. 오늘날 발산동의 평지·구릉 구조는 당시 농경지와 산림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6. 일제강점기·해방 직후 – 김포군 양서면으로 편입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양천군과 부근 군현들이 대규모로 조정되면서, 양천현 후신인 양천군은 김포군 등에 편입된다. 발산 일대 역시 경기도 김포군 양서면(또는 양동면)에 포함된다. 네이버 블로그 ‘서울 강서구 발산동 지명 유래’ 글을 보면, “1896년에 경기도 양천군 가곡면이던 이 지역이 1914년 김포군 양서면으로 개칭되었다”고 설명한다.

즉, 발산동의 유래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시기에도 마을 이름·산 이름으로서 발산은 그대로 유지되었고, 다만 상위 행정 단위만 양천에서 김포로 바뀐 셈이다. 실제로 1930년대 지도를 보면 발산리, 내발산리, 외발산리 같은 표기를 확인할 수 있다. 지명 계보는 유지되고, 행정 경계만 흔들린 것이다.

7. 1963년 서울 편입 – 발산동이라는 도시 지명이 되다

발산동의 유래에서 가장 큰 행정적 전환점은 1963년이다. 이 해에 서울특별시가 대대적으로 시역을 확장하면서, 김포군 양서면·양동면 일대가 서울시 영등포구로 편입된다. 이때 내발산리·외발산리 역시 서울 관할이 된다. 처음에는 영등포구 양서출장소 관할 내발산동·외발산동으로 분류되었다가, 점차 “발산동회”라는 이름으로 통합된 자치적 조직이 구성된다.

1977년에는 영등포구에서 강서구가 분구되면서 발산동은 강서구 소속이 된다. 이후 1989년에는 발산동이 발산1동·발산2동으로 행정동 분동이 이루어지고, 내발산동·외발산동이라는 법정동 체계 아래 현재의 발산1동(내발산동)과 발산2동(외발산동) 구도가 자리 잡는다. 발산동의 유래를 행정구역 표기 상으로 정리하면, “발산리·내발산리·외발산리 → 내발산동·외발산동(영등포구) → 발산동(강서구) → 발산1·2동(행정동 분동)”이라는 흐름이다.

8. 내발산동과 외발산동 – 산을 기준으로 나뉜 마을

발산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내발산동과 외발산동이다. 이름만 보면 단순히 “안쪽/바깥쪽 발산동” 같지만, 실제 기준은 수명산/발산이라는 산이다. 산의 품 안, 즉 북쪽과 동쪽 사면에 자리한 마을이 내발산동, 산의 바깥, 즉 서쪽·남쪽 사면이 외발산동이다.

내발산동은 강서구 중앙부, 수명산 근린공원 북·동쪽 기슭에 자리한 주거지·상업지로, 동쪽으로는 화곡동, 북쪽으로는 가양동과 접한다. 수명산이 마을을 북서쪽에서 감싸고 있어 “산 안쪽 마을”이라는 표현이 실감 난다. 외발산동은 수명산의 남·서쪽 사면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로, 서쪽은 공항동, 남쪽은 신월동·부천시와 접한다. 내발산동에서 산 능선을 넘어 내려가면 외발산동이다.

이 구조는 발산동의 유래, 즉 발산(鉢山)이라는 산을 중심에 놓고 마을의 위치를 정의한 방식의 전형적인 사례다. 산이 기준이 되고, 마을 이름은 그 기준과의 상대적 관계를 보여준다. 내발산동·외발산동이라는 이름 안에 “산을 중심으로 한 마을 구조”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9. 발산동 들판 – 도시 안에 남았던 마지막 농경지

발산동의 유래가 산 이름에서 출발했다면, 20세기 후반 발산동은 또 다른 풍경으로 유명했다. 바로 “서울 안의 마지막 대규모 논·밭”이다. 여러 블로그와 사진 기록을 보면, 1990년대 후반까지도 발산역 인근에는 넓은 논과 밭이 남아 있었다. “발산동 들판”이라는 제목의 사진 기록에는 황금빛 벼가 출렁이는 풍경과 비닐하우스, 트랙터가 찍혀 있다.

도시 개발이 마곡지구와 공항대로 축을 중심으로 진행되기 전까지, 외발산동과 공항동 사이에는 상당히 넓은 농경지가 존재했다. 한강변 김포평야와 연결되는 일종의 도시 속 완충지대였다. 발산동의 유래가 산 이름에서 시작되었다면, 현대의 발산동 이미지는 “산과 들이 공존했던 서울 서남부의 마지막 농촌 풍경”까지 포함한다.

지금은 마곡지구 개발과 각종 아파트 단지, 도로망 확충으로 이 들판 대부분이 사라졌지만, 옛 사진과 지도를 보면 발산동이라는 지명이 단지 산 이름뿐 아니라 “산 아래 펼쳐진 들판과 마을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이었음을 실감할 수 있다. 발산동의 유래를 입체적으로 보려면, 발산/수명산과 더불어 이 “발산동 들판”도 함께 떠올리는 게 좋다.

10. 발산동의 유래가 오늘 주는 의미

정리해 보면, 발산동의 유래는 네 단계로 읽을 수 있다. 첫째, 지형 – 밥주발을 엎어놓은 것 같은 산, 발산(鉢山/수명산)이 중심이다. 둘째, 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발산이라는 지명이 조선시대부터 존재했다. 셋째, 마을 – 산 안쪽과 바깥쪽에 위치한 내발산동·외발산동이라는 자연마을 구조. 넷째, 행정 – 양천현 가곡면 발산리에서 김포군 양서면, 서울 영등포구, 강서구 발산동으로 이어지는 행정구역 계보다.

이 네 가지를 한꺼번에 엮어 보면, 발산동이라는 이름은 단지 “지하철역 이름”이 아니라 산·들·마을·행정이 한데 얽힌 결과물이다. 산이 지명을 만들고, 지명이 마을을 규정하고, 마을이 도시 안에서 행정동 이름으로 고정된 구조다. 발산동을 걸을 때 수명산 정상에 한 번 올라가서 동네를 내려다보면, 밥주발을 엎어놓았다는 옛사람들의 표현이 어떤 지형적 감각에서 나온 말인지 피부로 느껴질 것이다. 그 감각을 이해하는 순간, 발산동의 유래는 더 이상 추상적인 어원 설명이 아니라, 눈앞 풍경을 읽는 하나의 틀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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