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문동의 유래 – 효자문 두 개에서 비롯된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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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문동의 유래 – 효자문 두 개에서 비롯된 이름

쌍문동의 유래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雙門洞) · 효자문 두 개에서 비롯된 이름

지명 유래 도봉구 역사 조선시대 효자 서울 동명

서울 도봉구 쌍문동(雙門洞)의 '쌍(雙)'은 둘, '문(門)'은 문이다. 말 그대로 '문이 두 개 있던 곳'이라는 뜻인데, 그 문이 어떤 문이었느냐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효자문이었다는 설, 열녀문이었다는 설, 마을 어귀에 세운 이문(里門)이었다는 설까지 각각 다른 사연을 품고 있다.

🏛️ 쌍문(雙門)이란

쌍문동이라는 이름은 1914년 노원면과 해등촌면이 통합되어 노해면이 설치될 때, 소라리와 계성리가 합쳐지면서 공식 지명으로 처음 등장했다.

그러나 '쌍문'이라는 이름 자체는 그보다 훨씬 오래된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이 지역에 세워졌던 두 개의 문, 즉 나라에서 효행이나 열행을 표창하기 위해 내려준 정려문(旌閭門)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설이다.


유래 1 — 계성의 아들이 세운 효자문

📜 가장 오래 전해지는 이야기

지금의 쌍문동 286번지 근처에 계성(鷄聲)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계성과 그의 부인이 이름 모를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은 살아 계실 때 부모를 정성껏 모시지 못한 것을 크게 후회했다.

아들은 부모의 묘 앞에 움집을 짓고 여러 해 동안 그곳에서 기거하다가 결국 자신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이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그의 지극한 효성에 감동하여 묘 근처에 효자문을 두 개 세웠고, 그 이후로 이 일대를 '쌍문(雙門)'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쌍문동 지명 유래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널리 알려진 설이다. 도봉구 공식 자료에서도 이 이야기를 가장 먼저 소개하고 있다. 계성이라는 인물이 마을 이름을 계성리로 남길 만큼 이 일대에서 비중 있는 인물이었고, 그의 아들의 효행이 이 지역 사람들에게 깊이 각인됐음을 알 수 있다.


유래 2 — 남궁지 부자의 효자문

📜 비교적 최근에 알려진 설

효자 남궁지(南宮漬)와 그의 처 하동 정씨(鄭氏), 그리고 그의 아들 효자 남궁조(南宮繰)가 고종(高宗)으로부터 효자문을 하사받았다. 부자(父子) 2대에 걸친 효행이 조정에까지 알려져 나라에서 직접 정려문을 내린 것이다.

이 두 사람의 묘소가 예전 노해파출소 자리인 옛 쌍문동 중심지에서 바라볼 때 한 곳은 남쪽에, 다른 한 곳은 북쪽에 있었다고 한다. 남쪽과 북쪽에 각각 세워진 효자문이 '쌍문'의 기원이 됐다는 이야기다.

"효자 남궁지와 그 아들 남궁조 부자(父子)가 고종으로부터 효자문을 받았는데, 부자의 묘소가 옛 쌍문동 중심지에서 볼 때 남과 북에 있어 쌍문이라 하였다."
— 도봉구 동명 유래 자료

계성 아들의 이야기와 남궁 부자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사람에 관한 것이지만, 두 설 모두 핵심은 같다. 이 지역에 효행을 기리는 문이 두 개 세워졌고, 그것이 지명이 됐다는 것이다. 마을 이름이 된 이유가 효자였다는 점은 두 설 모두 일치한다.


유래 3 — 열녀문 두 개, 그리고 쌍갈래 길

🏮 열녀문 두 개 설

지금의 창동 우체국 부근에 예전에 열녀문이 두 개 있었다는 이야기다. 효자문이 아니라 열녀를 기리는 문이었다는 점에서 앞의 두 설과 다르지만, 나라에서 내린 두 개의 정려문이 지명의 기원이 됐다는 구조는 같다.

🛤️ 쌍갈래 길 설

쌍갈래 길 어귀에 마을을 드나드는 이문(里門)이 있었는데, 이를 '쌍갈문이'라고 부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발음이 변해 '쌍문'이 됐다는 이야기다. 이름의 기원이 사람이 아닌 지형과 지물에 있다는 점에서 결이 다른 설이다.

세 가지 유래 중 어느 것이 가장 정확한 역사적 사실인지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도봉구가 공식적으로 가장 무게를 두는 설은 효자문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다. 계성 아들의 시묘살이와 남궁 부자의 2대 효행, 두 이야기 모두 이 지역에 효심을 기리는 문화가 깊이 뿌리내려 있었음을 보여준다.


행정 구역으로 자리잡기까지

조선시대
이 지역에 계성리와 소라리 등 자연 마을이 형성돼 있었다.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 소속이었다.
1914년
노원면과 해등촌면이 통합돼 노해면이 설치됐다. 이때 소라리와 계성리가 합쳐지면서 '쌍문리'라는 공식 지명이 처음 등장했다.
1963년 1월 1일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이 서울특별시에 편입되면서 쌍문리가 서울 도봉구 쌍문동이 됐다.
1977년 이후
인구가 늘면서 쌍문1동~4동으로 분동됐다. 현재 법정동은 쌍문동 하나지만 행정동은 네 개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쌍문동이 품고 있는 것들

쌍문동은 지명 유래 외에도 대중에게 익숙한 이미지들이 있다. 만화 캐릭터 둘리가 이곳 고길동 아저씨 집에 얹혀사는 설정으로 유명해지면서 쌍문동은 둘리의 동네로도 알려졌다. 그래서 도봉구 창1동 일대에는 둘리 캐릭터를 활용한 조형물과 거리가 조성돼 있다.

📺 응답하라 1988과 쌍문동

드라마 '응답하라 1988'도 쌍문동을 배경으로 한다. 덕선이네, 정환이네, 선우네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골목 풍경이 1980년대 서울 서민 동네의 정서를 그대로 담아 큰 인기를 끌었다.

효자문 두 개에서 이름이 시작된 동네가, 이웃 간의 정과 가족애를 그린 드라마의 배경으로 선택됐다는 것이 묘하게 어울린다. 지명의 기원이 된 효심과 드라마가 담은 따뜻한 인정이 결이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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