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건국, 중흥기, 그리고 문화
발해의 건국, 중흥기, 그리고 문화 - 해동성국의 역사와 유산

서론: 발해의 등장과 역사적 의의
발해는 698년 대조영(고왕)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 세력을 규합하여 건국한 국가로,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을 아우르며 동북아시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발해는 고구려의 정신적·문화적 유산을 계승하며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이뤘고, 문화적으로도 독창성을 발휘하여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본 글에서는 발해의 건국, 중흥기, 그리고 문화적 성과를 중심으로 발해의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1. 발해의 건국

1) 대조영의 리더십과 건국 배경
발해는 고구려 멸망(668년) 이후 고구려 유민과 말갈 세력의 결합으로 탄생한 국가입니다. 고구려 장군 출신인 대조영은 당나라의 압박과 말갈 세력의 독립 의지를 조율하며 동모산(현재 중국 지린성)에서 발해를 건국하였습니다.
- 고구려 계승: 발해는 고구려의 정신적·문화적 유산을 계승하며, 독립 국가로서 자주성을 강조했습니다.
- 건국 과정: 대조영은 당나라의 억압을 피하며 독립을 위한 기반을 다졌고, 698년 동모산에서 발해를 건국하며 국호를 진(震)이라 정했습니다.
사료: "대조영이 동모산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진이라 하였다." (구당서)
2) 초기 외교와 당나라와의 관계
발해는 건국 초기 당나라와 갈등 관계를 유지했지만, 이후 외교적 접근을 통해 공존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 초기 갈등: 발해 건국 직후, 당나라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군사적 견제를 시도.
- 외교적 전환: 문왕 대에 이르러 당나라와의 우호 관계를 통해 국제적 위상을 강화.
2. 발해의 중흥기
1) 문왕의 치세와 정치적 안정
발해는 문왕(재위 737~793년) 시기에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이루며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 중앙집권 체제: 문왕은 3성 6부제를 도입하여 행정 체계를 강화하고, 당나라의 제도를 부분적으로 수용하여 정치 체제를 안정화했습니다.
- 불교 융성: 문왕은 불교를 장려하며 사찰 건립과 불상 제작을 지원하며 국가 통합을 이뤘습니다.
- 외교 확대: 당나라와 일본, 신라 등과 활발히 교류하며 발해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습니다.
사료: "발해는 문물을 갖춘 번성한 나라로, 그 교역이 널리 퍼졌다." (신당서)
2) 선왕과 해동성국
선왕(재위 818~830년) 시기 발해는 최대 영토를 확보하며 '해동성국'이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 영토 확장: 발해는 만주와 연해주, 한반도 북부까지 포함하는 광대한 영토를 확보했습니다.
- 경제 발전: 해상과 육상 교역로를 중심으로 상업과 농업이 발전하며 경제적 번영을 이뤘습니다.
- 문화적 융성: 독창적인 예술과 건축물이 발달하며 발해는 문화적으로도 높은 성과를 남겼습니다.
3. 발해의 문화
1) 고구려 계승과 독창성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하면서도 다양한 문화를 융합하여 독창적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 건축: 상경성의 주작대로와 궁궐터는 고구려 건축 양식을 계승한 대표적 사례.
- 예술: 금속 공예와 불교 미술에서 높은 기술 수준과 창의성을 보여줌.
2) 불교 문화
발해는 불교를 국가적 이념으로 삼아 사찰 건축과 불상 제작을 통해 종교와 예술을 융합했습니다.
- 사찰: 발해의 주요 사찰들은 고구려와 당나라 양식을 융합한 독창적 건축물로 평가받습니다.
- 불상: 발해의 불상은 섬세한 조각 기술과 미적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3) 국제 교류
발해는 동아시아의 국제 교역망 중심지로 성장하며 문화적,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 교역: 발해는 당나라, 일본, 신라와의 교역을 통해 국제적 위상을 강화했습니다.
- 외교 사절: 발해의 사신들은 당나라와 일본에 파견되어 문화 교류를 주도했습니다.
결론: 발해의 역사적 의의와 유산
발해는 고구려의 유산을 계승하며 동북아시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문왕과 선왕 시기의 중흥기는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이뤘으며, 발해의 문화는 고구려, 말갈, 당나라, 일본 등 다양한 요소를 융합하여 독창성을 발휘했습니다.
발해의 역사는 한반도와 만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통합적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현대에도 우리의 정체성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