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과 외세의 침탈: 조선 후기의 시련과 대응
서론
조선 후기, 세계는 제국주의 열강이 아시아로 확장해가던 시기였습니다. 조선 역시 이런 흐름 속에서 외세의 압력으로 문호를 개방하고, 외교·경제적으로 불평등한 조약을 체결하며 국권 상실로 이어지는 아픈 역사를 겪게 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조선의 개항 배경, 외세의 침탈 과정, 그리고 조선의 대응과 그 결과를 살펴보겠습니다.
1. 개항의 배경
조선이 개항하게 된 배경에는 외부적인 압력과 내부적인 요인이 결합되어 있었습니다.
1-1. 외부적 요인
- 제국주의 열강의 확장: 19세기 후반,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 서구 열강과 일본은 동아시아를 식민지화하거나 경제적으로 지배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 중국과 일본의 개항: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중국은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며 서양 열강에 문호를 개방했습니다. 일본 역시 1854년 미·일 화친 조약 체결 후 개항하며 조선을 둘러싼 국제 정세가 급변했습니다.
1-2. 내부적 요인
- 정치적 혼란: 세도 정치로 인해 조선의 중앙 권력이 약화되고, 지방에서는 부패가 심화되었습니다.
- 경제적 위기: 삼정 문란과 농민 봉기로 인해 경제적 기반이 흔들리고, 내부 안정이 약화되었습니다.
2. 개항과 불평등 조약 체결
조선은 외세의 압력에 의해 문호를 개방하였으며, 불평등한 조약 체결로 인해 주권이 심각하게 침해되었습니다.
2-1. 강화도 조약 (1876)

- 배경: 일본은 운요호 사건(1875)을 빌미로 조선에 문호 개방을 요구했습니다.
- 내용: 조선은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며 부산, 원산, 인천 등 3개 항구를 개방하고 일본의 치외법권을 인정했습니다.
- 의의: 강화도 조약은 조선이 체결한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지만, 불평등 조약으로 평가됩니다.
2-2. 불평등 조약의 확대
- 조미 수호 통상 조약 (1882): 조선은 미국과 통상 조약을 체결하며 서양 국가들과의 교류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치외법권, 최혜국 대우 조항 등을 포함한 불평등 조약이었습니다.
-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1882): 청나라는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강조하며 경제적·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 이후 체결된 조약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구 열강과의 조약에서도 조선은 주권을 침해당했습니다.


3. 외세의 침탈 과정
개항 이후 조선은 경제적 침탈과 정치적 종속 상태로 빠져들었습니다.
3-1. 경제적 침탈
- 조선 경제의 예속화: 외국 상인들은 개항장을 중심으로 조선의 쌀, 인삼 등 주요 농산물을 약탈적으로 수출하며 조선의 경제적 기반을 약화시켰습니다.
- 화폐 유통의 혼란: 일본 상인이 대량으로 유통한 동전(메이지 전환기 화폐)은 조선 경제의 화폐 질서를 붕괴시켰습니다.
- 토지 약탈: 외국인들은 개항장을 중심으로 토지를 매입하며 경제적 지배를 확대했습니다.
3-2. 정치적 종속
- 청과 일본의 영향력 확대: 조선은 청나라와 일본의 간섭 속에서 독립적인 외교권과 행정권을 잃어갔습니다.
- 갑신정변 (1884): 개화파가 일본의 지원을 받아 정변을 일으켰으나, 청군의 개입으로 실패했습니다. 이는 조선의 내정에 대한 외세 개입의 전형적인 사례로 평가됩니다.
4. 조선의 대응과 근대화 노력
조선은 외세의 침탈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개혁과 근대화를 시도했으나, 외세의 압력 속에서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4-1. 개화 정책
- 통리기무아문 설치: 조선은 개화 정책의 일환으로 근대적 행정 기구인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했습니다.
- 신식 군대 창설: 일본의 군제와 서구 군사 기술을 도입해 별기군을 창설했습니다.
- 근대적 학교 설립: 육영공원과 같은 근대적 교육기관이 설립되었습니다.

4-2. 동학농민운동
동학농민운동은 외세의 경제적 침탈과 정부의 부패에 저항하며 조선의 자주적 개혁을 요구한 민중 운동이었습니다. 비록 실패했으나, 이는 이후 독립운동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5. 외세의 침탈과 조선 멸망의 과정
외세의 개입은 조선의 자주적 근대화를 방해하고, 국권 상실로 이어졌습니다.
- 청·일 전쟁과 일본의 영향력 확대: 청·일 전쟁(1894~1895) 이후 일본은 조선에서 청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자신들의 지배권을 강화했습니다.
- 을사늑약과 한일병합: 1905년 을사늑약을 통해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한 일본은 1910년 한일병합을 강행하며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결론
조선 후기 개항과 외세의 침탈은 국가적 시련과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조선은 외세의 압력 속에서 근대화를 시도했으나, 외교적·정치적 종속을 막지 못하고 결국 국권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개항기의 경험은 자주적 근대화와 외세에 대한 경각심을 강조하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역사를 통해 자주와 독립의 가치를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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